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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평론가 이권우가 말하는 혼란한 시대 속 우리의 '최소한의 윤리'

“이 두려움의 시대에 나는 『맹자』를 읽는다.”도서평론가 이권우의 간명하고 날카로운 성찰맹자가 살았던 전쟁과 혼란의 전국시대와 기후 위기, 불평등이 심화된 21세기 사이의 구조적 상동성을 짚어내며, 오래된 미래를 열어줄 맹자의 지혜를 탐구하다.Q. 작가님께서는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서적을 깊이 있게 읽어오셨는데요, 이 책에서 유독 맹자의 가르침을 깊이 있게 다루셨습니다. 지금, 이 불안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맹자의 지혜가 특히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맹자는 부국강병의 기치 아래 전쟁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았습니다. 백성의 삶이 도탄에 빠진 시대이지요. 맹자는 바로 이 혼란의 시대를 어떻게 해야 평화의 시대로 전환할지를 고민한 사상가입니다.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지구라는 행성은 기후위기를 겪고, 세계는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국내 정치는 내란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았습니다. 우리 시대를 고민하는 사람과 맹자가 만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일종의 구조적 상동성이라 할까요, 비슷한 점이 많으니만큼 우리보다 앞서 고민하고 해결책을 내세운 맹자에게서 오늘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넘어설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대표적으로 맹자가 양혜왕에게 이익을 말하지 말고 인의를 내세워야 한다고 한 점을 주목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자본주의는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체계입니다. 그 결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불평등 문제를 낳았고, 무한한 성장이라는 환상에 젖어 기후위기를 겪게 되었잖아요. 사랑과 마땅한 도리를 실천하는 삶의 가치가 우선될 적에 지속가능한 성장이 펼쳐지게 됩니다. 맹자는 오래된 미래로서 우리가 위기에서 벗어날 돌파구를 열어줍니다.Q. 책의 제목이 《최소한의 윤리》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소한’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얻게 될 ‘최소한의 변화’는 무엇일까요?윤리라고 하면, 억압적이고 최대치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인 양 이해하잖아요. 그런데 맹자를 읽어보면 윤리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려 할 적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덕목이나 이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이것이 무너지면 더불어 사는 사회는 무너지고, 인간은 짐승의 상태로 몰락할 거라 보았지요. 달리 말하면 맹자는 인간이 짐승의 상태에서 인간다운 상태로 발전하려면 최소한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탐구하고 이를 알리려 애쓴 사상가라 볼 수도 있습니다.물론 맹자는 공자를 이어 한 개인이 수신, 즉 자신을 다스리는 일을 통해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최대한의 윤리도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점보다 최소한의 윤리를 더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최대를 강조하면 최소마저도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오늘 우리도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자기강화를 통해 무한한 경쟁에서 이겨내고 그 결과를 승자가 독식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정신이 지구공동체를 일대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맹자가 말한 최소한의 윤리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좀 더 인간적이고 평화스러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맹자를 읽으면 바로 이런 정신에 동의하는 변화가 일어날 거라 믿습니다. Q. ‘착하게 살면 손해’라는 인식이 만연하고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요즘 시대에, 맹자가 말한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즉 ‘차마 못 본 척하지 못하는 마음’은 여전히 유효할까요?나는 맹자가 근대적 의미의 사회계약론적 사유를 먼저 선보였다고 봅니다. 로크와 유사한 면이 있어요. 또 《정의론》을 쓴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와 비교할 만한다고 봅니다. 롤스는 하나의 사고실험을 제안했습니다. 한 사회의 기본원칙을 정하기 위해 구성원이 모였다고 가정하자는 겁니다. 단 자신의 배경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나이, 성별, 인종, 정치나 종교적 신념 등을 모르는 건데, 이를 ‘무지의 장막’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구성원은 어떤 합의에 이를까요? 독자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만났을 때 인간은 자신의 삶을 위한 기본조건이 보장된 상황을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롤스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면, 그 이익이 사회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차등 원칙을 내세웁니다.우리도 한번 상상해봅시다. 무지의 장막에서 사회에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이라고 합의하게 될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못 본 척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할 겁니다. 물론 맹자는 이 마음이 타고난 것, 즉 본성이라 했습니다만, 롤스처럼 사고실험을 해보자는 것이지요.우리는 능력주의 사회를 살고, 반복적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인공지능으로 일자리가 사라질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자기강화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절대 자기강화로만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없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있어야 실패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자는 데 시민적 동의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 마음이 오늘 우리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Q.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처럼 극단이 환호받는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동양 고전이 말하는 ‘중용의 가치’란 무엇이며,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 있을까요?​맹자는 중용을 권도로 표현하지요. 산술적 의미의 중간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 중간의 위치를 바꾸는 겁니다. 이를 미국의 동양철학자인 로저 에임스는 ‘일상에서 초점을 늘 새롭게 맞춰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 어렵지요. 그래서 공자가 중용의 길은 칼날 위를 걷기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 극단으로 떨어지지 않고 중용의 삶을 사는 걸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기 철학이 있으면, 아무래도 중용을 지키기 좋습니다. 근데 자기 철학이 한낱 아집이면 아무 소용없겠지요. 고전을 부지런히 읽으며 옛 선현의 지혜를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중용의 기준을 찾고 실천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일상에서 고전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기를 권합니다.Q. 이번 책에서 깊이 있으면서도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맹자> 읽기의 방식을 보여주셨는데요, 지금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독자들이 고전 읽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 활용할 만한 ‘고전 독서법’을 조언해 주신다면?고전은 시간의 담금질을 이겨낸 지혜의 대륙붕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고, 인류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제시해줍니다. 그러기에 독서라는 시추를 통해 지혜의 원유를 내 삶으로 퍼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고전을 읽다 보면 고전을 면치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너무 무리해서 도전하지 말고 해설서나 강의를 먼저 읽거나 들어보았으면 합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맹자를 읽고 싶다면 《최소한의 윤리》를 먼저 읽어보는 게 큰 도움이 된답니다.Q. 마지막으로, 지친 일상 속에서도 ‘최소한의 윤리’를 지키며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독자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최소한의 윤리를 지켜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여전히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더불어 사는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꿈을 꾸는 건 바로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말하길 ‘덕 있는 이는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함께하는 이가 있다’ 했습니다. 삶의 주변에 뜻을 같이하는 이가 많으니 힘내시길 바랍니다.  

편집자가 먼저 빠져든 100년의 퍼즐, 《마약 전쟁》

저에게 논픽션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 맞추기와도 같습니다. 알고 있던 단편적인 지식이나 사실, 역사의 조각들을 맞추어 우리 사회의 좀 더 큰 그림을 이해하는 일. 게다가 시간과 집중력도 요구되고요. 제가 그동안 알았던 '마약과의 전쟁'은, 흔히 척결해야 할 대상을 향해 'OO과의 전쟁'이란 표현을 쓰는 관용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의 첫 책이 '마약'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오오...), 그런데 그 책을 제가 맡게 된다는 걸 알고서(네네...저요?)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이란 표현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마약 사범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공표하며 쓰인 용어란 것을요. 그래서 처음 이 책의 원고를 받고서는, 아 그럼 대충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겠군 하고 시작했는데... 웬걸... 저자 요한 하리는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00년대 초에 저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인물 '해리 앤슬링어'의 삶을 들려주기 시작해요. 어린 시절 마약에 취한 여성의 절규하는 비명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던 소년이 미국 연방마약국의 초대 국장이 되어 '마약 전쟁'을 세계화시킨 여정, 그리고 마약과 마약중독자들을 혐오했던 것만큼 유색인종 또한 혐오했던 그가 흑인과 멕시코인 등을 통제하기 위해서 마약 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 앤슬링어의 표적이 되어 치료와 회복의 기회는 박탈당한 채 마약 중독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우리가 모두 아는 재즈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기구한 인생.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유통되던 마약이 금지되자, 불법으로 마약을 유통하며 뉴욕 일대를 접수한 마약상의 이야기까지. 마약 단속자, 중독자, 판매자라는 세 유형의 인물을 통해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반전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듣다가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게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구조와 똑같은데? 하고 말이죠.앞서 설명한 소설처럼 빠져드는 전개는, 《마약 전쟁》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삼분의 일밖에 안됩니다. 탐사 저널리스트인 요한 하리는 시계를 현재로 되돌려 마약과의 전쟁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장소들 그리고 문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세계 곳곳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거든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KKK단에 잠입한 경찰관의 이야기, 마약 복용을 처음으로 비범죄화한 포르투갈의 사례... 원고를 읽으며 열심히 퍼즐 맞추기를 했더니,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들이 이해되면서 '세상에 하나의 진실은 없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마약 범죄는 왜 구조적으로 줄어들지 않는지, 우리는 왜 계속 이 전쟁에서 실패하고 있는지 그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으로 괴로운 사람에게 진정 필요한 것

세상에는 겪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마음의 고통도 그렇습니다. 분명 내 마음인데 마음처럼 되지도 않고, 이렇게나 괴로운데 나를 이렇게 만든 게 무엇인지 몇 마디로 간단히 일축할 수 없을 때가 많지요. 그리고 여기, 우울증을 진단받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고통과 마주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 NHS 정신과 의사 벤지 워터하우스의 회고록 《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입니다.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어쩌다 우울증에 걸린 걸까요? 그 설명할 수 없는 괴로움 앞에서 그는 어떤 행보를 보였을까요? 그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환자들까지, 마음의 병을 견디는 평범한 얼굴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숨어 있을까요? 웃음과 눈물, 감동과 해학이 교차하는 정신 병동의 드라마를 이 책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정신 질환을 '극복'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호한 고통을 '이해'해보기를 권하지요. 그것은 우울증, 조현병, 양극성 장애, 인격 장애 같은 진단명에 가려진 각자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서로를 연민하고 아주 작은 진전에 박수를 보내는 인간애와 맞닿아 있습니다. 삶의 복잡성과 인간 내면의 모호함을 조금 서툴러도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저자와 환자들의 노고가 애달프면서도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정신과 의사로서, 아들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불완전함 앞에 절망하는 벤지에게 심리분석가 조지프가 건넨 불가사리 우화를 여러분에게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으로 괴로운 사람에게 진정 필요한 건, 전지전능한 구원자가 아닌 이 고통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또 다른 누군가일지도 모릅니다.노인이 해변을 걷고 있었어요. 만조 때 밀려온 불가사리가 모래사장에 잔뜩 널려 있었는데 한 소년이 그것들을 집어 바다에 던져 넣어주는 것이 보였지요. 노인이 소년에게 뭘 하는지 묻자 소년이 말했죠.'이 불가사리들을 구해주고 있어요.'노인은 웃으면서 말했어요.'얘야, 불가사리는 수천 마리고 넌 혼자인데 이렇게 한다고 누굴 얼마나 구하겠니?'소년은 불가사리 한 마리를 더 집어 바닷물로 넣어주며 대답했지요.'저 녀석은 구했죠.'

타인의 역사를 빌려 우리의 질문을 던져보는 일

《바람의 검심》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만화책을 넘기며 ‘막부 말기’, ‘메이지 유신’ 같은 단어를 처음 접했죠. 사무라이들이 여전히 칼을 들고 목숨을 걸던 시대. 화려한 검술보다는 그 혼란과 격동의 분위기에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이후 《료마전》 같은 드라마를 보며 ‘근대 일본’이라는 배경에 점점 매료되었습니다. 근대화,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패망까지, 한 나라가 이 모든 것을 100년 안에 겪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단순한 드라마나 만화의 배경이 아닌, ‘역사’로 읽으려 하니 마음 한켠이 답답했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그런 도약을 이뤘을까’, ‘그때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같은 질문들이 생겼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서울대 박훈 교수님의 연재를 접했고, “이건 반드시 책으로 묶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잃어버리는 것들

《납작한 말들》을 편집하는 동안 자꾸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납작한 말들’이 제가 겪었던 일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죠. 가령 “어쩌라고? 넌 친구도 없잖아”는 제가 실제로 학창 시절에 들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급식을 먹을 때마다 자꾸 툭툭 치는 아이에게 항의하자 저에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친구가 없을수록 반에서 서열이 낮다는 것이고, 서열이 낮은 아이에게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인식의 표현이었을 겁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저의 다른 특징들은 ‘친구가 없는 아이’라는 정의와 함께 납작하게 찌그러졌습니다.반대로 제가 타인을 납작하게 찌그러뜨린 경험들도 생각이 났습니다. 면접장에서 다른 경쟁자들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에 따라 안심과 불안을 오가는 에피소드도 제가 실제로 경험한 일이거든요. 그 지원자들에게는 수많은 삶의 맥락이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들이 ‘어느 대학 출신 경쟁자’로만 인식되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친구의 숫자’와 마찬가지로 ‘출신 대학’이 사람의 급수를 나누는 잣대로 사용되었기 때문일 겁니다.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인 ‘살아남기 위해 잃어버리는 것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 저자 오찬호의 말대로 우리는 극단적인 경쟁 사회에서 생존에 도움 되지 않는 것들을 차단해버리며 살아왔습니다. 인문학 공부,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사유, 주류에서 벗어난 상상력 등은 가급적 외면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나아가 생존주의와 능력주의를 모든 일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았습니다. 서열이 낮은 사람은 당연히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납작한 생각’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풍성하고 입체적인 우리의 삶이 이렇게 납작해져도 괜찮은 건가요? 《납작한 말들》을 읽으며 모두가 납작해지는 아포칼립스에서 벗어나 타인의 입체적인 삶을 상상해봤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