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미래에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24-09-30
중학생인 제 아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합니다. 처음엔 연습장에 끄적이더니, 어느 날인가 아이패드에서 아무도 쓰지 않은 채 방치된 그림 그리기 앱을 열어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가기 전에, 학교 갔다 와서, 학원 갔다 와서, 밥 먹으면서 하는 일이 ‘유튜브 틀어놓고 그림 그리기’입니다. 청소년기에 취미가 있다는 건 다행이지만, 디지털기기를 하루에 몇 시간씩 붙들고 있으니 걱정이 안 될 수 없죠.
그림 그리는 게 좋으면 진로로 삼고 본격적으로 학원에 다녀보라고 해도 단호히 고개를 젓습니다. 그냥 취미라나요. ‘하긴... AI가 말만 하면 다 그려주는데 비전 있는 직업이 되겠어?’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속으로 불안을 삼킵니다. 1학기 수학시험 폭망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말이죠(공부는 대체 언제 할 거니...).
<우리는 모두 다르게 배운다> 초고를 받았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자인 이수인 대표도 똑같은 경험을 고백했기 때문이죠.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걸 보며 ‘네가 아무리 잘 그려도 AI보다는 못 그릴 텐데?’라는 생각을 잠시 했던 저자는, 이내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러고는 새로운 시대에는 그림 그리기의 목표가 ‘남들보다 낫게 그려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그림 그리는 작업을 통해 생각을 표현하고, 더 잘 표현할 방법을 궁리하고, 타인과 어떻게 협력하고 소통할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이야기하지요.
원고를 읽은 후, 걱정을 조금 걷어내고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전에는 놓치고 있던 긍정적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평면적이고 단순하던 아이의 그림은 도구에 익숙해질수록 눈에 띄게 발전해 갔습니다. 앱의 기능을 스스로 깨우쳐 자유자재로 다루게 되었죠. 역사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만화로 요약 정리하면서 공부하더군요. 친구의 생일에는 공들여 그린 그림을 선물하고, 친구에게 ‘사랑해’라는 답장을 받으며 관계를 쌓아갑니다.
뛰어난 기능을 겨루는 게 배움의 본질은 아닐 것입니다. 스스로 성장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일 테고, 그것을 잘 돕는 게 어른의 역할이겠지요. 잠시나마 역할을 망각한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갈등할 것입니다. 입시가 인생을 좌우한다고 여기는 현실은 금방 바뀌진 않을 테니까요. 그때마다 이 책을 꺼내어 읽으려고 합니다. ‘아이의 미래에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함께요.
#어크로스단상 #편집자눈빨간참새
#우리는모두다르게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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