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와 원고의 적정 거리
24-10-04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닐 때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연기를 못해서 선배들에게 매번 혼나기도 했고, 지금은 연극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편집자라는 직업이 배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새로운 원고를 받을 때부터 모든 홍보가 끝날 때까지 저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이죠. 지난 몇 년간 저는 철학자 질 들뢰즈이기도 했고, 가사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글을 쓰려는 작가이기도 했으며, 수천 년의 문화사를 정리하는 문학연구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스스로를 저자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지요. 편집자는 저자의 창작물을 멋지게 포장해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편집자는 저자가 아니며 저자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타인’입니다. 원고의 정수를 전달하기 위해 저자에게 이입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창작물의 주인은 아닙니다. “나는 원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동시에 서포터로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가?” 늘 이런 질문을 머릿속에 품고 있었고, 선을 지키려는 긴장이 몸과 마음을 지배했죠.
신간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를 편집하면서, 그러한 긴장 때문에 저자와 동행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시각장애의 세계로 조금씩 들어가는 저자의 경험이 너무나 생생하여, 혹시나 책을 만들 때 편집자의 편견과 무지가 개입하진 않을지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러나 송섬별 번역가님이 작성한 ‘옮긴이의 말’을 읽으니 저의 조심스러움이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번역가님은 책을 번역하기 위해 점자를 배우고, 눈을 감고 인도를 걷는 등의 활동을 했지만 그것이 “비장애인의 세계로 돌아갔을 때 유용하게 쓰일 무용담”처럼 느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에는 “처음부터 타인의 세계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존재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저는 편집자가 배우와 같다고 떠들어댔지만, 정작 번역가님이 한 일의 1퍼센트도 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부끄러움 덕분에 뒤늦게나마 저자와 함께하며 책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놀라운 점은 이 책에 참여한 이들 모두가 저자의 자리에 서보려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표지 디자이너님도, 표지 그림을 그린 작가님도, 교정자님도, 모두가 저자의 입장이 되어보려 노력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표지에 들어간 점자가 과연 잘 읽힐지, 저자의 이야기를 그림에 잘 담아낼 수 있을지, 이 에피소드가 저자에게 어떤 상황이었을지 고민하고 상상하면서요. 자신이 아는 세계를 넓히기 위한 저자의 여정에 모두가 동참한 느낌이었어요. 이 귀한 경험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열어젖힌 여정에 많은 분들이 함께한다면 더 바랄 게 없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