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500만원이 결제되었다?
24-05-09
2019년 말에 테슬라는 모바일 앱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테슬라 차주가 앱으로 차량 업그레이드(‘완전 자율 주행’ 기능의 잠금을 해제하는 자동 조종 기능 등)를 구매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 추가 기능의 가격은 무려 4000달러가 넘었습니다. 한화로 50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지요.
이 기능이 도입된 후, 많은 테슬라 차주가 실수로 새 기능을 구매했는데 테슬라에서 환불을 거부한다는 사례가 속속 올라왔습니다. 언론인 테드 스타인은 여기에 어떤 기법이 활용되었는지 분석했습니다. 결제 화면에 ‘업그레이드는 환불이 불가합니다’라는 문구가 매우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데, 검은색 바탕에 대비가 잘되지 않는 어두운 회색으로 표시되어 있어 사용자가 알아보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소비자가 눈치채기 어렵게 만들어놓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테슬라 고객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블랙 스완》의 저자인 경제학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2020년 1월에 이 문제를 제기하며 환불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테슬라 고객지원 부서의 환불 불가 메시지를 받았고, 이를 트위터에 게시했습니다. 메시지는 ‘소프트웨어 구매 시 환불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집의 인테리어를 추가했다가 소비자 변심으로 업체에 환불을 요구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탈레브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이 구매는 정말 의도치 않게 이루어졌습니다. 앱 버튼이 주머니에서 무심결에 눌렸습니다.
4333달러나 되는 구매 금액에 확인이나 비밀번호 입력 절차 등이 없는 앱은 본 적이 없습니다. (…)
아마존에서 6.99달러짜리 킨들 책을 사는 것도 이것보단 어렵고, 실수로 구매했을 때 구매 철회도 가능합니다. (…)
나는 귀사의 소프트웨어를 시도한 적도, 그 멍청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적도 없습니다.
(…) 귀사의 앱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불만이 제기되고 나서 얼마 후, 테슬라에서는 원래 입장을 철회하고 이런 유형의 인앱 구매에 대해 48시간의 취소 기간을 추가했습니다. 다음 그림은 취소 기간에 대한 설명이 추가된 인앱 캡처 화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검은색 바탕에 어두운 회색 글씨로 표시되어 있어 구분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 내용은 영국의 UX 전문가인 해리 브리그널의 저서 《다크패턴의 비밀》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다크패턴이란 사용자의 자율성, 의사결정, 선택을 방해하거나 손상하도록 설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를 뜻합니다. ‘다크 넛지’, ‘속임수 설계’ 등으로도 불리지요.
해리 브리그널은 2010년 ‘다크패턴’이라는 용어를 처음 정의하고 널리 알린 장본인입니다. 가입은 쉽지만 해지는 어려운 구독 서비스, 안 좋은 후기는 쓸 수 없도록 설계된 제품 리뷰 칸, 한정, 마감을 강조하며 사용자를 압박하는 타이머 등이 모두 다크패턴입니다.
앞으로 AI를 활용한 개별화, 맞춤형 설계가 더욱 용이해질수록 설계자조차 의도하지 않았던 다크패턴이 사용자를 더욱 교묘하게 공략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크패턴에 더 주목하고 알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