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덕들이 인정한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공부1》 김태수
24-12-30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영상을 본 적 있는 유튜브 채널 '함께하는 세계사'. 역덕들이 인정한 '진짜' 역사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채널의 운영자 김태수는 국내에서 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대학교에서 근대 독일사로 최근 박사 공부를 마쳤다고 합니다.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가 유튜브라는 매체를 통해 역사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태수는 직접 역사라는 학문 자체가 현재와 과거가 소통함으로 살아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역사학자로서 과거를 소개하고 오늘날의 세계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요. 역사를 단순히 외우는 과목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틀로 바라봤을 때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함께하는 세계사' 유튜버 김태수 작가와의 인터뷰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공부1》 저자 김태수
Q. 언제부터 역사에 흥미를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본격적으로 역사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은 계기도요.
처음 역사에 흥미를 느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만화 삼국지를 읽으면서였습니다. 삼국지의 매력에 빠진 뒤에는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에 관한 책을 계속 읽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로마사에 관한 책을 읽으며 역사에 대한 흥미를 계속 키워 나갔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사학과로 진로를 결정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히 역사 속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책을 읽었다면,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조금 더 진지하게, 학문적 의미에서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1학년 때 읽은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와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를 읽으며 직업적인 역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서양철학사”는 저에게 ‘사상에도 역사가 있구나’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고, “혁명의 시대”는 제가 살고 있는 근대가 어떤 구조 속에서 탄생했는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후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주된 관심사도 조금씩 변했지만, 역사에 대한 저의 주된 관점은 이때 자리 잡았습니다.
Q. 첫 책의 제목을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1》으로 지은 의미가 있을까요? 역사 공부를 질문으로 시작하면 그렇지 않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역사를 배우는 데 있어 필수적인 첫걸음입니다.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행위는 또한 더 넓은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동반합니다. 예컨대 “왜 많고 많은 나라 중에 하필이면 스위스가 중립국이 되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진 후 이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면, 단순히 스위스 자체의 역사가 아니라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외교사의 큰 줄기 중 하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됩니다.
하지만 적절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시대착오적인 질문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사는 그 자체로 완결된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질문과 해석을 통해 현재와 소통하는 살아 있는 학문입니다. 이 책은 21세기를 사는 한국인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독자가 근현대 서양사를 탐구하고, 우리가 현재 사는 세계가 어떻게 지금의 세계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방대한 세계사 가운데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1》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1》에 소개된 각 꼭지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쩌다가 지금의 세계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주제들입니다. 역사는 단절된 섬처럼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 법률 체계, 심지어는 일상의 문화와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서양의 역사적 경험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한국의 역사만을 쫓는다면, 역설적으로 한국의 역사조차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워집니다. 좋거나 싫거나 한국의 근대화 과정 자체가 서양 근대사의 흐름과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담긴 주제들은 단순히 서양의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건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선별되었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모든 에피소드가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면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19세기 독일에서 시간이 통일되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통일된 ‘시간’이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이나 시계를 보면 누구나 정확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시간을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런 ‘표준 시간’의 개념은 놀랍게도 비교적 최근에야 등장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다보면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이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에 익숙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에서 사용되는 시간이 19세기 말까지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에 개인적으로 큰 흥미를 느낀 이유는 ‘시간’이라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개념이 역사적, 사회적, 기술적 변화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갈등과 저항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당연함’ 뒤에 어떤 역사적 맥락이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유튜브 '함께하는 세계사'
Q. 역사 공부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암기'입니다. 달달 외워야 하는 압박감에 역사 공부를 멀리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역사를 재밌게 공부할 수 있을까요?
암기 위주의 교육으로 역사에 흥미를 잃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흥미를 느끼는 주제나 시대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역사는 거대한 연표나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이며,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깊이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려면 흥미가 생기는 실마리부터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임진왜란에는 관심이 있거나 1차 세계대전과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에는 호기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혹은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취미가 있다면, 그 분야의 역사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축구라는 스포츠는 어떻게 탄생했을까?”를 궁금해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나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관심사와 연결된 역사적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역사는 더 이상 낯설고 지루한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호기심을 채워주는 탐구의 여정으로 다가옵니다.
유튜브는 현대인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학습 도구 중 하나입니다. 역사 분야에서도 다양한 콘텐츠가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흥미롭게 전달됩니다. 전투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하거나 복잡한 개념을 그래픽으로 설명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이나 맥락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튜브는 책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습니다. 유튜브의 영상은 대부분 시간의 제약을 받으며, 역사적 사실을 단순화하거나 왜곡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출처와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 영상만을 믿고 학습할 경우 편향된 관점을 가질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독자에게 깊이 있게 생각할 시간을 제공하는 책과는 달리 영상은 정보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저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개념을 처음 접하는 입문 단계에서 유튜브를 활용하고, 보다 깊이 있는 탐구는 책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혁명의 시대”를 비롯한 에릭 홉스봄의 “시대” 4부작입니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 홉스봄의 4부작은 단순한 역사 서술을 넘어 근대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풀어낸 걸작입니다. 역사를 단편적인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 속에서 바라본 홉스봄의 통찰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시리즈는 근대 세계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두 번째는 엠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의 “몽타이유”입니다. 입니다. 이 책은 역사학이 단순한 왕조와 전쟁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삶으로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미시사’의 고전으로, 중세 농민들의 신앙, 일상생활, 사랑, 갈등과 애환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세 번째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서는 아니지만, 이 책은 역사학과 사회학이 어떻게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저작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사건에 대한 역사서술이 아니라 역사적 변화를 이끈 ‘가치관’의 형성 과정을 탐구하며, 자본주의가 단순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 ‘문화’임을 아름다운 논지 전개로 보여줍니다.
저는 괴팅겐에서 공부를 하며 역사 연구를 넘어 ‘학문을 대하는 태도’와 ‘학문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습니다. 제가 괴팅겐에서 처음으로 수업을 들은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은퇴한 노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학기의 첫 수업을 듣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그들은 서로 둘러앉아 강의 내용에 관해 열띤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모습은 저에게 일종의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대학 강의가 등록된 학생들만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괴팅겐, 그리고 독일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나이와 학위, 학문적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배움’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강의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역사 공부는 단순히 학점을 따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평생을 탐구하고 질문을 던지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여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을 통해 독자분들도 역사 공부가 주는 기쁨과 슬픔, 자신을 성장시키는 질문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