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저자 인터뷰 “다정함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고 믿어요”
25-01-17
《대리사회》,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로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온 작가 김민섭이 ‘다정함’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무례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한 연결에 대하여』는 김민섭이 각자도생의 한국 사회를 작가, 대리운전 기사, 동네서점 주인, 출판사 대표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내며 빚은 성찰과 그 안에서 만든 작은 기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Q. 지난 몇 년간 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나왔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하고 기쁩니다. 저의 글과 삶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계속 쓰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Q. 이 책의 제목은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이고, 내용 역시 ‘다정’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다정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나와 관계가 없는 타인들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가족, 애인, 친구에게 자신의 정을 주는 건 쉽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는 사람의 재난을 보며 슬퍼합니다. 내가 저기에 있었다면, 내가 사랑하는 그들이 저러한 처지가 되었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동정을 기반으로 나와 닮은 사람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일. 그러한 다정함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고 믿고 있습니다.
Q. 이 책에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요. 선생님 스스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저는 2014년 이후 카드 결제 서명을 할 때마다 추모 리본을 그리고 있습니다. 수천 번의 서명을 반복해 나가는 동안 언젠가부터는 그저 습관이 되었지만, 그렇게 전송된 일상의 세월들이 저라는 사람의 태도를 만들어냈음을, 저는 압니다. 저의 서명을 보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가볍게 물었던 친구와 가게의 점원이 자신들도 그러한 세월을 함께하겠다고 말했던 그 순간은,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거창한 선행이 아니라 다정한 일상이 한 개인의 다정한 태도를 만듭니다.
Q. 몇 년의 시간을 다룬 책인 만큼, 책에서 선생님이 정말 다양한 정체성으로 등장해요. 작가, 대학 시간강사, 대리운전 기사, 맥도날드 직원, 서점 주인, 출판사 대표 등등.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을 거쳐오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구나’ 혹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셨었나요?
몇 년 전만 해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도시에서 남들 하는 일을 하며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고. 그게 잘 사는 삶이라고. 특히 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교수가 되지 않으면 나의 삶은 망한 것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늘 스스로를 갉아먹고 망가뜨렸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단단한 태도를 가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은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인생의 의미란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일을 행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러한 삶은 결과와 관계없이 선택과 동시에 이미 행복해진다는 것을, 몇 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이를테면 맥도날드에서 일하든 대리운전을 하든 그 무엇을 하든,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삶이라는 것은 매일매일 그를 어딘가에 다다르게 만들며 새롭게 나아가게 합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기보다는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행하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그 길의 끝엔 나도 모르던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처지와 환경이 어떠하든 내가 걷는 진흙 길에서 작은 들꽃을 발견하고 웃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 자녀들이 있고, 학교 강연을 자주 다니시는 만큼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해요. 지금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학교 강연에 가면 이기적인 고민을 많이 하라고 말합니다. 진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고도 덧붙입니다. 저도 중고등학생 시절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직업의 연봉은 얼마인지 전망은 어떠한지 정년보장은 되는 일인지 등등.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이기적인 선택을 고민하지만 이타적인 결과를 함께 고민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의 주인공인 93년생 김민섭 씨가 “제가 디자인을 공부했으니까, 환경학을 더 공부해서,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는 건물을 디자인해 보고 싶어요.”라고 했던 것처럼. 이기적인 고민만 한 진로는 너희의 부모님만 응원하겠지만 이타적인 고민이 더해진 진로는 온 세상이 너희를 응원할 것이라고 만나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타적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기심으로 기반으로 한 이타심은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방식의 다정함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다정한 선택은 끝내 잘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Q. ‘작가 김민섭’으로서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쓰는 삶이 저의 사는 삶을 추동하면 좋겠습니다. 말하자면, 글을 쓰며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정확히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Q. 서점 ‘당신의 강릉’을 운영하고 계신데요. 서점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책을 읽을 분들이 찾아올 때면 기쁩니다. 찾아와 주시는 당신들을 만나고파서 외부 일정이 없는 날은 서점에 머물고 있습니다. 일요일 오전에 오시면 그날은 저 혼자 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가 커피를 내려드립니다. 맛없을 텐데도 맛있다고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제가 운영하는 비영리법인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와 함께, 서점을 찾은 모든 청소년들에게 그날 초대한 작가의 책을 무료로 나누어 주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찾아와 작가를 만나고 서명을 받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제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하고 싶은 다정한 일들을 다해 보고 싶어서 연 서점입니다. 물론 당장 모든 걸 할 순 없고 조금씩 나은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언젠가 저의 글을 읽은 당신이 저를 찾아오시면 반갑게 맞이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서점에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