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평론가 이권우가 말하는 혼란한 시대 속 우리의 '최소한의 윤리'
25-10-29
“이 두려움의 시대에 나는 『맹자』를 읽는다.”
도서평론가 이권우의 간명하고 날카로운 성찰
맹자가 살았던 전쟁과 혼란의 전국시대와
기후 위기, 불평등이 심화된 21세기 사이의 구조적 상동성을 짚어내며,
오래된 미래를 열어줄 맹자의 지혜를 탐구하다.
Q. 작가님께서는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서적을 깊이 있게 읽어오셨는데요, 이 책에서 유독 맹자의 가르침을 깊이 있게 다루셨습니다. 지금, 이 불안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맹자의 지혜가 특히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맹자는 부국강병의 기치 아래 전쟁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았습니다. 백성의 삶이 도탄에 빠진 시대이지요. 맹자는 바로 이 혼란의 시대를 어떻게 해야 평화의 시대로 전환할지를 고민한 사상가입니다.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지구라는 행성은 기후위기를 겪고, 세계는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국내 정치는 내란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았습니다. 우리 시대를 고민하는 사람과 맹자가 만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일종의 구조적 상동성이라 할까요, 비슷한 점이 많으니만큼 우리보다 앞서 고민하고 해결책을 내세운 맹자에게서 오늘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넘어설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대표적으로 맹자가 양혜왕에게 이익을 말하지 말고 인의를 내세워야 한다고 한 점을 주목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자본주의는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체계입니다. 그 결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불평등 문제를 낳았고, 무한한 성장이라는 환상에 젖어 기후위기를 겪게 되었잖아요. 사랑과 마땅한 도리를 실천하는 삶의 가치가 우선될 적에 지속가능한 성장이 펼쳐지게 됩니다. 맹자는 오래된 미래로서 우리가 위기에서 벗어날 돌파구를 열어줍니다.
Q. 책의 제목이 《최소한의 윤리》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소한’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얻게 될 ‘최소한의 변화’는 무엇일까요?
윤리라고 하면, 억압적이고 최대치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인 양 이해하잖아요. 그런데 맹자를 읽어보면 윤리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려 할 적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덕목이나 이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이것이 무너지면 더불어 사는 사회는 무너지고, 인간은 짐승의 상태로 몰락할 거라 보았지요. 달리 말하면 맹자는 인간이 짐승의 상태에서 인간다운 상태로 발전하려면 최소한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탐구하고 이를 알리려 애쓴 사상가라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맹자는 공자를 이어 한 개인이 수신, 즉 자신을 다스리는 일을 통해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최대한의 윤리도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점보다 최소한의 윤리를 더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최대를 강조하면 최소마저도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자기강화를 통해 무한한 경쟁에서 이겨내고 그 결과를 승자가 독식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정신이 지구공동체를 일대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맹자가 말한 최소한의 윤리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좀 더 인간적이고 평화스러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맹자를 읽으면 바로 이런 정신에 동의하는 변화가 일어날 거라 믿습니다.
Q. ‘착하게 살면 손해’라는 인식이 만연하고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요즘 시대에, 맹자가 말한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즉 ‘차마 못 본 척하지 못하는 마음’은 여전히 유효할까요?
나는 맹자가 근대적 의미의 사회계약론적 사유를 먼저 선보였다고 봅니다. 로크와 유사한 면이 있어요. 또 《정의론》을 쓴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와 비교할 만한다고 봅니다. 롤스는 하나의 사고실험을 제안했습니다. 한 사회의 기본원칙을 정하기 위해 구성원이 모였다고 가정하자는 겁니다. 단 자신의 배경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나이, 성별, 인종, 정치나 종교적 신념 등을 모르는 건데, 이를 ‘무지의 장막’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구성원은 어떤 합의에 이를까요? 독자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만났을 때 인간은 자신의 삶을 위한 기본조건이 보장된 상황을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롤스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면, 그 이익이 사회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차등 원칙을 내세웁니다.
우리도 한번 상상해봅시다. 무지의 장막에서 사회에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이라고 합의하게 될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못 본 척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할 겁니다. 물론 맹자는 이 마음이 타고난 것, 즉 본성이라 했습니다만, 롤스처럼 사고실험을 해보자는 것이지요.
우리는 능력주의 사회를 살고, 반복적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인공지능으로 일자리가 사라질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자기강화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절대 자기강화로만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없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있어야 실패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자는 데 시민적 동의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 마음이 오늘 우리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Q.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처럼 극단이 환호받는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동양 고전이 말하는 ‘중용의 가치’란 무엇이며,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맹자는 중용을 권도로 표현하지요. 산술적 의미의 중간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 중간의 위치를 바꾸는 겁니다. 이를 미국의 동양철학자인 로저 에임스는 ‘일상에서 초점을 늘 새롭게 맞춰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 어렵지요. 그래서 공자가 중용의 길은 칼날 위를 걷기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 극단으로 떨어지지 않고 중용의 삶을 사는 걸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기 철학이 있으면, 아무래도 중용을 지키기 좋습니다. 근데 자기 철학이 한낱 아집이면 아무 소용없겠지요. 고전을 부지런히 읽으며 옛 선현의 지혜를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중용의 기준을 찾고 실천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일상에서 고전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기를 권합니다.
Q. 이번 책에서 깊이 있으면서도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맹자> 읽기의 방식을 보여주셨는데요, 지금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독자들이 고전 읽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 활용할 만한 ‘고전 독서법’을 조언해 주신다면?
고전은 시간의 담금질을 이겨낸 지혜의 대륙붕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고, 인류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제시해줍니다. 그러기에 독서라는 시추를 통해 지혜의 원유를 내 삶으로 퍼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고전을 읽다 보면 고전을 면치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너무 무리해서 도전하지 말고 해설서나 강의를 먼저 읽거나 들어보았으면 합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맹자를 읽고 싶다면 《최소한의 윤리》를 먼저 읽어보는 게 큰 도움이 된답니다.
Q. 마지막으로, 지친 일상 속에서도 ‘최소한의 윤리’를 지키며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독자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최소한의 윤리를 지켜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여전히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더불어 사는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꿈을 꾸는 건 바로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말하길 ‘덕 있는 이는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함께하는 이가 있다’ 했습니다. 삶의 주변에 뜻을 같이하는 이가 많으니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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