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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들깨의 내가 만든 책

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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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들깨의 내가 만든 책

24-06-21

‘프루스트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향을 맡으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에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어느 날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기를 맡다가 잃어버렸던 기억의 조각들을 떠올립니다. 그 기억을 더듬으며 과거의 기억과 시간을 되살리게 되죠. 신기하게도, 프루스트가 소설을 발표한 이후 신경과학자들은 미각과 후각이 장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직접 연관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프루스트는 뛰어난 신경과학적 통찰력을 가진 위대한 소설가였던 셈이죠.


프루스트가 통찰력을 발휘한 부분이 또 있습니다. 바로 독서예요. 독서가였던 프루스트는 〈독서에 관하여(On reading)〉에서 독서를 ‘지식의 성역’으로 표현합니다. 《프루스트와 오징어》의 저자 매리언 울프는 그 이유를 독서가 다른 데서는 결코 만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했을 수천 가지 실체와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곳, 각각의 새로운 실체와 진실을 통해 편안한 안락의자를 벗어나지 않고도 독서하는 사람 스스로 지적인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독서에 대한 사랑과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지적인 통찰이 묻어나는 말입니다. 프루스트의 이런 독서에 대한 관점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매리언 울프는 자신의 책 제목에 프루스트의 이름을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오징어는 뭘까요? 뇌과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던 1950년대에 신경과학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오징어의 축삭돌기였습니다. 축삭돌기는 신경 신호를 다른 뉴런으로 보내는 통로 역할을 하는데, 오징어의 중앙 축삭돌기는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큽니다. 사람의 축삭돌기와 비교하면 수백 배나 크죠. 오징어 축삭돌기를 실험하며 신경과학자들은 수많은 지식들을 발견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매리언 울프는 자신이 《프루스트와 오징어》를 집필하던 시기 인간의 독서에 관한 인지신경과학 연구가 1950년대 신경과학자들이 오징어를 연구를 하던 것과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지신경과학적 측면을 상징하는 오징어를 책 제목에 넣었죠.


《프루스트와 오징어》가 독서의 지적인 측면과 인지신경과학적 측면을 상징하는 말이라는 사실은 이 책이 독서를 설명하는 두 가지 관점을 보여줍니다. 독서라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에 대해 가장 문학적이고 가장 과학적인 방식으로 해설하는 이 책, 제목만큼 흥미롭습니다. 급속하게 디지털화된 문화 속에서 독서에 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느껴지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