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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독서 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 - 송승훈 경기 의정부 광동고등학교 교사

2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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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독서 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 - 송승훈 경기 의정부 광동고등학교 교사

2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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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에 만난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청소년 시절의 경험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고,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어떤 경험보다 책을 통해 경험한 세상이 가장 넓고,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지혜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청소년 독서 교육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서평 쓰기, 책 대화하기, 구술평가 등 직접 학교 현장에서 독서교육을 실천하고 계신 송승훈 선생님을 모셔 현재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계신 교사, 사서 분들과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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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한 권 읽기 도서 리스트를 선정할 때, 교사의 추천 목록이 점점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학생들은 자기의 진로와 관련된 책만을 찾아서 읽는 실정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어떤 방향으로 운영해야 할까요? 


진로 독서라는 명칭이 나오는 바람에 굉장히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진로 도서로 많이 실행했었죠. 또 학교에선 엄청나게 진로 교육을 가르칩니다. 융단폭격을 하는 수준이에요. 그러다보니 학생들도 책 읽기를 본인의 사회 경력을 관리하듯이 해나가는 문화가 자리잡았죠.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교사 추천 목록으로 밀고 나가라고 권유 드리고 싶어요.

 

​교사에겐 '어떻게 가르칠까?',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권한이 있습니다. 교육에 대한 결정권이 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실 때 아이들이 진로 도서만 선택적으로 취하는 게 깊이 있는 독서와는 거리가 있다는 판단이신거잖아요. 그러면 선생님의 권한을 행사하세요. 아이들은 투덜투덜 되겠지만 또 선생님을 따를겁니다. 


사실 진로 독서라고 생각할 때 학생들은 해당 직업 관련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진로 탐구는 여러 다양한 책들과 다양한 공부가 합쳐져야 최적의 진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내용을 알려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전공 적합성에 얽매여서 직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있어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직업을 가졌을 때 필요한 역량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운동 트레이너가 되고 싶은 친구에게는 심리학 책을 추천할 수 있어요. '너가 회원을 상대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거죠. 운동 지도사로서 성공하기 위해 사람 심리를 잘 이해하고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알려주면 학생들은 또 납득을 해요. 마찬가지로 미용사가 되고 싶은 친구에겐 말을 잘하기 위해 문학책을 추천할 수 있죠.

저는 초등학교 사서입니다. 독서 교육을 통해 인성 독서까지 나아가는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제 경험으로 인성 독서는 좋은 글을 읽고 대화하면서 깨우치는 맛이 있을 때, 그때 좀 인간성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었어요. 읽히기만 하지 말고 같이 토론을 하는 게 더 효과가 좋습니다. 그런데 이건 굉장히 불규칙하게 우연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때가 오길 기다리면서 기다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이 안 되면 나중에 깨우치겠지,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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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랑 독서 토론을 할 때 지켜보면 알맹이 없이 무의미한 방향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하려면 어떤 지원을 해줘야할까요?


자동차 네비게이션을 보면 1.5km 앞에서 우회전 하세요, 50m 가서 유턴하세요, 이렇게 아주 세세하게 길을 안내해줍니다. 토론 교육도 이와 비슷해요. 교사가 질문 목록을 촘촘하게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시집을 읽을 때 주는 질문, 소설책을 읽을 때 주는 질문, 인물 평전을 읽을 때 주는 질문 등등 책의 유형에 따라 괜찮은 질문 목록을 만들어 토론 내내 이야기 흐름이 쭉 이어질 수 있게 시나리오를 갖추고 수업을 진행해야 해요. 대화가 무의미하게 빠진다 싶을 때 새로 학생들에게 질문을 줄 수 있도록요.


​예를 들어 소설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고 생각해볼까요? 저는 첫 번째 질문은 읽은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거나 왠지 마음에 걸리는 한 문장을 찾아와서 소리 내서 읽고 고른 이유를 나누라고 합니다. 학생 모두가 입을 열어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고요, 좋은 문장이 갖는 힘이 있어서 그 소리가 닿는 범위 안에서 공간의 빛깔이 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입이 터져요. 그 다음 질문은 등장인물을 중 한 명을 골라서 그 사람 세계관 분석을 시켜볼 수 있고요. 인물들은 자기 세계관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선택을 왜 했는지도 물어볼 수 있고요. 다음 질문은 인물이 다른 결정적 선택을 했다면 줄거리가 달라졌을지, 다른 등장인물 중에 내 주변사람(친구나 가족)이랑 비슷한 인물이 있는지, 마지막에는 작가가 이 소설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말해보는 등 흐름에 맞는 시나리오를 짜볼 수 있겠죠. 책의 성격에 따라 질문을 갖고 있으면 무의미한 상황을 조금 벗어날 수 있어요. 


책의 유형에 따른 질문이 더 궁금하다면 《함께 여는 국어교육》 2022 여름호 원고 <책 유형별 구술평가 질문>을 살펴보셔도 좋겠습니다. 

읽지 않는 책들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평가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나요? 


제가 신문이나 잡지에서 누가 쓴 서평을 볼 때 그 책을 읽지 않고 보잖아요. 내가 읽지 않은 책이지만 읽은 것 같고 이 책이 좋다 나쁘다 평가를 할 수 있죠. 독서 교육도 그런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서평을 쓰거나 독서 토론 내용을 기록해서 낼 때 중요한 건 책을 안 읽은 사람도 이걸 보고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교사가 읽지 않은 책을 권하고 평가하는 걸 기본으로 합니다. 전 이게 현대적인 독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중세 독서 교육은 그 반대죠. 사실 생각해보면 조선시대 내내 몇 백 년 동안 추천 도서가 똑같았단 얘깁니다. 그 말은 자신이 학문 수련을 하는 과정에서 읽었던 책이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읽히는 책이 똑같았다는 것이죠. 근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거든요. 엄청나게 지식 생산 속도가 빨라진 시대이기 때문에 교사가 읽은 책만 추천하면 너무 뒤쳐지게 됩니다. 안 읽은 책으로 가르치는 건 그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이 갖출 수 있는 능력은 한계가 있고 어느 정도 되면 그 수준에서 가르치게 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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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로 학교 밖에 지역 아동 센터나 도서관에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교 밖 교육과 학교 내 교육이 시너지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선생님이 보셨을 때 어떤 프로그램을 늘리면 좋을까요? 


어떤 프로그램이던지 학생들을 매혹시킬 수 있다면 다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제가 괜히 말을 얹었다가 선생님이 실력 발휘를 못할 수도 있고요. 가장 바라는 건 학생들이 재밌어하면서 좋은 책을 좋아하게 되면 모든 선생님들이 10번이고 절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사실 고전 읽기 같은 거창한 건 기대 안 합니다. 사실 고전 읽기 프로그램의 성공 사례가 굉장히 적어요. 오히려 성공했다는 기사를 보면 '어? 저거 내가 좀 알아봐야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큰 목표보다는 아이들이 즐겁게 책을 읽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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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읽어야하나요?' 라는 학생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요? 


학생들이 어떤 질문을 하면 지적인 대화를 원해서 물어본 것인지, 그냥 물어본 것인지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먼저 이 학생이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는 전제 하에 말씀드립니다.


이제 전자책이 나온지 한 20년이 지났습니다. 그게에 따른 연구도 많이 나왔고 또 많은 부분이 합의가 됐어요. 최근 우리나라도 기사나 EBS를 통해서도 소개되었죠. 결론은  깊이 읽기를 위해서는 아직 종이책이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이에요. 디지털 기기, 모니터나 스마트폰으로 읽으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훑어봅니다. 시선 추척기를 이용해서 보면 종이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시선의 움직임을 보인다고 해요. 인터넷 화면을 넘길 때 상대적으로 빨리 넘기는 것 같을 때가 있잖아요? 그게 감이 아닙니다. 훑어보고 빨리 넘어가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래서 실험 결과들을 보면 종이책으로 읽고 공부한 집단과 전자책으로 읽고 공부한 집단의 학습 성취도 차이가 굉장히 큽니다. 전자책이 낮아요. 그래서 종이책 읽기가 필요한 거다, 저는 그렇게 말합니다.


인지심리학 기반으로 독서 연구를 하는 쪽에서는요, 양손잡이 문해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마침 여기에 이 책이 있군요.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나온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아주 잘 정리가 되어있습니다. 이 책이 가장 최근에 전자책과 종이책 읽기에 대한 여러 실험과 데이터를 총 집대성한 책입니다.


이 책을 작년 물꼬방 국어교사사업의 독서교육 평가 연수에 사용한 책입니다. 250명 회원이 이 책을 같이 읽고 토론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답을 알 수 있어요. 왜 책이여야 하냐, 동영상 매체는 왜 안 되는가, 아이들이 접근하기 쉬운 디지털 기기로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저희도 처음에는 헷깔렸어요. 하지만 다른 거예요. 실제로 저도 종이로 일부분을 복사해서 안내하는 것과 디지털 기기로 학습지와 안내를 했을 때 디지털 기기를 사용했을 때의 성취가 눈에 띄게 낮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성의없게 본 게 아니에요. 이게 디지털의 속성이라는 거예요.  디지털로도 물론 지적 훈련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좀 괜찮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처럼 아직 훈련을 하는 단계에서는 종이책 읽기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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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책을 읽고 글쓰기를 유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중고등학생들이 자기 경험이라고 생각되는 책을 읽혀야해요. 사람은 글쓰기 기법을 많이 배우지 않아도 자기가 아주 인상 깊게 경험한 내용은 진솔하게 쓸 수 있고 그게 감동이 됩니다. 저도 처음 대학을 졸업해서 교사가됐을 때 학교에서 배운 여러가지를 활용해서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글을 너무 못써서 힘들었어요. 왜냐면 교사는 결과가 안 좋으면 내가 못가르쳐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유명한 생활 글쓰기 선생님들의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따라해보니 애들이 멀쩡하게 글을 쓰는 거예요! 이게 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대학에서 배운 이론이 학습 현상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론은 상위 몇프로, 아주 표준적인 학생을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키면 시키는대로 안 해요. 딴 짓하는 애가 있고 멍때리는 애가 있고 뒤늦게 따라하는 애도 있고요. 그런데 제가 교과서에서 배울 때 이런 학생들은 없었거든요. 다르다는 걸 알고 학생의 기준에서 생각해야 하더라고요.


제 나름 경험으론 성장소설이 효과가 좋아요. 자기 또래들의 이야기니까 거기에 대해 나도 할말이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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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교육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책 읽는 뇌와 읽기의 과학책 매리언 울프의 《프루스트와 오징어 》, 《다시, 책으로》 나오비 배런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살펴보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