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역사를 빌려 우리의 질문을 던져보는 일
25-08-27
《바람의 검심》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만화책을 넘기며 ‘막부 말기’, ‘메이지 유신’ 같은 단어를 처음 접했죠. 사무라이들이 여전히 칼을 들고 목숨을 걸던 시대. 화려한 검술보다는 그 혼란과 격동의 분위기에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이후 《료마전》 같은 드라마를 보며 ‘근대 일본’이라는 배경에 점점 매료되었습니다. 근대화,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패망까지, 한 나라가 이 모든 것을 100년 안에 겪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단순한 드라마나 만화의 배경이 아닌, ‘역사’로 읽으려 하니 마음 한켠이 답답했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그런 도약을 이뤘을까’, ‘그때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같은 질문들이 생겼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서울대 박훈 교수님의 연재를 접했고, “이건 반드시 책으로 묶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한국8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 책 편집 작업 내내 역사서를 만든다기보다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 혹은 액션영화의 대본을 다듬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등장인물이 수십 명, 배경은 도쿄에서 교토, 사쓰마번과 조슈번(오늘날 가고시마와 야마구치), 다시 서울과 베이징까지 이어집니다. 생생한 문장 속에서 사카모토 료마나 이토 히로부미 같은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이 숨 쉬던 역사 현장의 공기를 느끼는 일이 매일같이 이어졌습니다. 편집을 마치고 실물로 받아본 책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실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대 일본의 선택과 도약, 그 빛과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일은 곧 조선의 길, 오늘의 한국이 놓인 자리까지 함께 성찰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이 책을 통해 일본의 근대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역사를 빌려 우리의 질문을 던져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때 우리는 왜 뒤처졌는가’라는 질문에서 멈추지 않고,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독서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