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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먼저 빠져든 100년의 퍼즐, 《마약 전쟁》

저에게 논픽션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 맞추기와도 같습니다. 알고 있던 단편적인 지식이나 사실, 역사의 조각들을 맞추어 우리 사회의 좀 더 큰 그림을 이해하는 일. 게다가 시간과 집중력도 요구되고요. 제가 그동안 알았던 '마약과의 전쟁'은, 흔히 척결해야 할 대상을 향해 'OO과의 전쟁'이란 표현을 쓰는 관용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의 첫 책이 '마약'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오오...), 그런데 그 책을 제가 맡게 된다는 걸 알고서(네네...저요?)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이란 표현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마약 사범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공표하며 쓰인 용어란 것을요. 그래서 처음 이 책의 원고를 받고서는, 아 그럼 대충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겠군 하고 시작했는데... 웬걸... 저자 요한 하리는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00년대 초에 저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인물 '해리 앤슬링어'의 삶을 들려주기 시작해요. 어린 시절 마약에 취한 여성의 절규하는 비명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던 소년이 미국 연방마약국의 초대 국장이 되어 '마약 전쟁'을 세계화시킨 여정, 그리고 마약과 마약중독자들을 혐오했던 것만큼 유색인종 또한 혐오했던 그가 흑인과 멕시코인 등을 통제하기 위해서 마약 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 앤슬링어의 표적이 되어 치료와 회복의 기회는 박탈당한 채 마약 중독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우리가 모두 아는 재즈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기구한 인생.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유통되던 마약이 금지되자, 불법으로 마약을 유통하며 뉴욕 일대를 접수한 마약상의 이야기까지. 마약 단속자, 중독자, 판매자라는 세 유형의 인물을 통해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반전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듣다가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게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구조와 똑같은데? 하고 말이죠.앞서 설명한 소설처럼 빠져드는 전개는, 《마약 전쟁》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삼분의 일밖에 안됩니다. 탐사 저널리스트인 요한 하리는 시계를 현재로 되돌려 마약과의 전쟁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장소들 그리고 문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세계 곳곳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거든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KKK단에 잠입한 경찰관의 이야기, 마약 복용을 처음으로 비범죄화한 포르투갈의 사례... 원고를 읽으며 열심히 퍼즐 맞추기를 했더니,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들이 이해되면서 '세상에 하나의 진실은 없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마약 범죄는 왜 구조적으로 줄어들지 않는지, 우리는 왜 계속 이 전쟁에서 실패하고 있는지 그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으로 괴로운 사람에게 진정 필요한 것

세상에는 겪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마음의 고통도 그렇습니다. 분명 내 마음인데 마음처럼 되지도 않고, 이렇게나 괴로운데 나를 이렇게 만든 게 무엇인지 몇 마디로 간단히 일축할 수 없을 때가 많지요. 그리고 여기, 우울증을 진단받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고통과 마주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 NHS 정신과 의사 벤지 워터하우스의 회고록 《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입니다.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어쩌다 우울증에 걸린 걸까요? 그 설명할 수 없는 괴로움 앞에서 그는 어떤 행보를 보였을까요? 그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환자들까지, 마음의 병을 견디는 평범한 얼굴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숨어 있을까요? 웃음과 눈물, 감동과 해학이 교차하는 정신 병동의 드라마를 이 책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정신 질환을 '극복'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호한 고통을 '이해'해보기를 권하지요. 그것은 우울증, 조현병, 양극성 장애, 인격 장애 같은 진단명에 가려진 각자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서로를 연민하고 아주 작은 진전에 박수를 보내는 인간애와 맞닿아 있습니다. 삶의 복잡성과 인간 내면의 모호함을 조금 서툴러도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저자와 환자들의 노고가 애달프면서도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정신과 의사로서, 아들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불완전함 앞에 절망하는 벤지에게 심리분석가 조지프가 건넨 불가사리 우화를 여러분에게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으로 괴로운 사람에게 진정 필요한 건, 전지전능한 구원자가 아닌 이 고통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또 다른 누군가일지도 모릅니다.노인이 해변을 걷고 있었어요. 만조 때 밀려온 불가사리가 모래사장에 잔뜩 널려 있었는데 한 소년이 그것들을 집어 바다에 던져 넣어주는 것이 보였지요. 노인이 소년에게 뭘 하는지 묻자 소년이 말했죠.'이 불가사리들을 구해주고 있어요.'노인은 웃으면서 말했어요.'얘야, 불가사리는 수천 마리고 넌 혼자인데 이렇게 한다고 누굴 얼마나 구하겠니?'소년은 불가사리 한 마리를 더 집어 바닷물로 넣어주며 대답했지요.'저 녀석은 구했죠.'

타인의 역사를 빌려 우리의 질문을 던져보는 일

《바람의 검심》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만화책을 넘기며 ‘막부 말기’, ‘메이지 유신’ 같은 단어를 처음 접했죠. 사무라이들이 여전히 칼을 들고 목숨을 걸던 시대. 화려한 검술보다는 그 혼란과 격동의 분위기에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이후 《료마전》 같은 드라마를 보며 ‘근대 일본’이라는 배경에 점점 매료되었습니다. 근대화,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패망까지, 한 나라가 이 모든 것을 100년 안에 겪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단순한 드라마나 만화의 배경이 아닌, ‘역사’로 읽으려 하니 마음 한켠이 답답했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그런 도약을 이뤘을까’, ‘그때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같은 질문들이 생겼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서울대 박훈 교수님의 연재를 접했고, “이건 반드시 책으로 묶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잃어버리는 것들

《납작한 말들》을 편집하는 동안 자꾸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납작한 말들’이 제가 겪었던 일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죠. 가령 “어쩌라고? 넌 친구도 없잖아”는 제가 실제로 학창 시절에 들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급식을 먹을 때마다 자꾸 툭툭 치는 아이에게 항의하자 저에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친구가 없을수록 반에서 서열이 낮다는 것이고, 서열이 낮은 아이에게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인식의 표현이었을 겁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저의 다른 특징들은 ‘친구가 없는 아이’라는 정의와 함께 납작하게 찌그러졌습니다.반대로 제가 타인을 납작하게 찌그러뜨린 경험들도 생각이 났습니다. 면접장에서 다른 경쟁자들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에 따라 안심과 불안을 오가는 에피소드도 제가 실제로 경험한 일이거든요. 그 지원자들에게는 수많은 삶의 맥락이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들이 ‘어느 대학 출신 경쟁자’로만 인식되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친구의 숫자’와 마찬가지로 ‘출신 대학’이 사람의 급수를 나누는 잣대로 사용되었기 때문일 겁니다.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인 ‘살아남기 위해 잃어버리는 것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 저자 오찬호의 말대로 우리는 극단적인 경쟁 사회에서 생존에 도움 되지 않는 것들을 차단해버리며 살아왔습니다. 인문학 공부,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사유, 주류에서 벗어난 상상력 등은 가급적 외면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나아가 생존주의와 능력주의를 모든 일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았습니다. 서열이 낮은 사람은 당연히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납작한 생각’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풍성하고 입체적인 우리의 삶이 이렇게 납작해져도 괜찮은 건가요? 《납작한 말들》을 읽으며 모두가 납작해지는 아포칼립스에서 벗어나 타인의 입체적인 삶을 상상해봤음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도서관과의 첫 만남이 기억나시나요?

여러분은 도서관과의 첫 만남이 기억나시나요? 저는 생생합니다. 안국동에 있던 할머니 댁을 갔는데 주변에 놀 만한 곳이 정독도서관뿐이었어요. 동생과 함께 한참을 뛰어다니다가 땀도 식힐 겸 어린이실에 구경 삼아 들어갔는데 정신 차려보니 네 시간이나 지나 있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해리 포터가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지나 처음 호그와트행 급행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 루시가 낡은 옷장 문을 열고 나니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처럼 말이지요. 그렇게 제 삶은 바뀌었습니다. 무언가를 읽고 쓰고 질문하고 상상하는 재미에 홀려버렸어요. 도서관에 스며들고 만 것이죠.그로부터 대략 25년이 흐른 지금, 저를 다시 한번 '도며들게' 한 책을 냈습니다. 초대 서울도서관장 이용훈, 도서평론가 이권우, 천문학자 이명현, 펭귄각종과학관장 이정모 저자의 신작 《그래서 우리는 도서관에 간다》입니다. 네 분 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서관 생활자'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살아온 환경도, 활동 영역도 저마다 다르지만, 도서관을 만나 읽고 쓰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지금도 그 주위를 공전하며 살고 계시니까요.《그래서 우리는 도서관에 간다》는 도서관 생활자 4인방의 도서관에 관한 노변정담입니다. 종로도서관에서 책으로 '놀던' 소년 이명현, "책을 통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좋아서" 사서의 꿈을 품은 학생 이용훈, 원형 도서관에 앉아 온갖 책을 섭렵하며 인문학적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청년 이권우, 독일 본시립도서관 사서들의 집념 어린 권유로 읽은 책들이 계기가 되어 첫 책을 쓰게 된 신인 작가 이정모의 이야기는 도서관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절감하게 하지요.그런가 하면 《코스모스》 '은하 대백과 사전' 개념을 설명하면서 도서관을 '인류 문명의 중간 기지'라고 명명하고,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적 연대의 뿌리를 도서관에서 찾기도 합니다. 오직 종이책 서가에서만 가능한 지식의 '우연한 발견'이 AI 시대에 필수적인 '새로운 질문'을 배양한다는 역설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무상의 독자'가 지갑을 열어야 출판도 존재한다는 일갈은 독서 생태계에서 도서관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새삼 일깨우더군요.저자 네 분들의 유쾌하면서도 진솔한 대화를 따라가면서 든 생각이 있습니다. '도서관을 향한 고민과 애정에도 얼굴이 있다면 이토록 다양하고 깊이 있는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지요. 이 책은 단순명료한 한마디로 일축할 수 없어서 더욱 가치 있는 책입니다. 기술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과 자본의 논리가 우세하는 시대에 어떻게 해야 도서관이 메마른 정서의 목을 축이고 다양한 생각의 씨앗을 움트게 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를 두고, 네 명의 저자가 무궁무진한 아이디어 배틀을 벌이거든요.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도서관 생활자들의 치열한 노변정담의 현장으로요. 벌이거든요.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도서관 생활자들의 치열한 노변정담의 현장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