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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숲에서 가장 오래 시간을 견딘 신화가 울창한 나무가 되어 서 있다는 느낌

고백합니다. 대학 시절,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정리한 <변신 이야기>는 교양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지만 동양의 신화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 없습니다. 졸업 후, 바그너의 오페라를 알려면 북유럽 신화를 알아야 한다기에 북유럽 신화 책은 사두었지만, 동아시아 신화를 다룬 책에는 무지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아시아 신들보다 서유럽 신들이 제게는 훨씬 익숙했습니다. 이러다 사후에 옥황상제가 아니라 제우스를 만나게 될 지경으로요.그래서인지 <처음 읽는 이야기 중국 신화>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그 충격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일단 누군가 세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혼돈이 죽자'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발상에 놀랐고, 인간을 창조한 신이 여신인 여와라는 것에 놀랐으며, 벌레가 된 사람들의 나라, 혹은 가슴에 구멍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가 있다는 그 자유롭고 거침없는 상상력에 놀랐어요. 지금은 책의 표지를 가득 채운 응룡, 제강, 승황, 상류가 그저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중국 신화의 매력에 빠진 거죠.무엇보다 편집하며 몇 번에 걸쳐 원고를 다시 읽는데도, 읽을 때마다 원고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당연한 것이더라고요. 신화라는 게 수백 수천 년을 거치며 다시 말해진 이야기들이니까요. 숲 속에 가장 오래된 나무가 우뚝 서 있듯. 이야기의 숲에서 가장 오래 시간을 견딘 신화가 울창한 나무가 되어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가오는 주말, 신화가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서 한숨 쉬었다 가는 것은 어떨까요? 마음 깊이 권해봅니다. 

‘음식과의 싸움’을 더 현명하게 해나갈 가이드를 만났다는 느낌

붕어빵 팥앙금만 먹고 나머지는 버리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정말 특이하게 먹는구나... 신기해 하다가, 그리고 얄미워하다가?! 어느새 소보로빵 소보로만, 포켓몬빵 슈크림만 등등 양금만 찾아먹는 저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평소엔 건강하게 먹어왔어요. 두부, 콩, 채소, 우유 위주로 먹는 식으로요. 그런데 달달하고 잘게 자를 필요가 없는 음식(이라기보다는 재료라고 해야겠죠) 앞에서는 ‘비정상적인’ 패턴으로 섭취를 하고 있었던 거죠. 단지 당이 떨어져서... 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쳤지만 종종 생각해요. 그때 그 행동들은 뭐였을까.이번에 만든 책 <매직필>에서 제 행동의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 <도둑맞은 집중력> 작가가 오늘날 우리가 왜 이렇게 살이 쪘는지, 운동과 식단을 통한 다이어트는 왜 항상 실패하는지,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으로 등장한 비만약이 정말 유일한 희망인지 질문하는 책인데요. 이 책의 세 번째 챕터 제목이 ‘포만감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왜 우리는 스테이크, 감자, 과일 생선 등 자연식품 대신 비스킷 시리얼, 케이크, 요구르트 등 가공식품을 더 선호하게 됐을까. 두 식품 사이 어떤 차이가 있는걸까. 질문하는 챕터인데요.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포만감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설탕, 지방, 탄수화물의 강력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가공식품은 음식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는데... 이 음식들은 우리를 덜 게 만들고, 혈당 스파이크를 만들어내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두가지 단백질과 섬유질 섭취를 부족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포만감을 지우고 끊임없이 먹도록 만든다는 것인데요.생각해보면 그랬어요. 붕어빵을 먹고 소보로빵을 먹으면 어떻게든 배가 불러왔지만(밀가루라는 탄수화물이 들어가니까) 소보로만, 슈크림만, 팥앙금만 먹으면 배부른 감각이 마비된 거 같았거든요. 이건... 치즈케이크를 먹거나 음료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였던 거 같아요. 정말 맛있다고 느끼면서 한판도 먹을 수 있는 기세였던 게 떠오르고...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부터 비만과 다이어트약까지 이 책 <매직필>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지만 영영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주제를 다루는데요. 저는 우리 모두가 평생 하고 있는 ‘음식과의 싸움’을 더 현명하게 해나갈 가이드를 만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너무 추워진 오늘 저녁은 허한 속을 달래기 위해 삼겹살에 소주를 먹을 예정이지만요. 

이런 책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어떻게 과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편집 후기 ”편집자님, 우주선 교수님이 태백으로 답사 가신다는데 같이 가실래요?“재작년 시월의 어느 날 《어떻게 과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의 저자인 이윤종 작가님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어요. 마침 한글날이어서 쉴 궁리만 하고 있던 저는 내심 망설였지만, 내 인생에 언제 지질학자의 현장 답사에 동행할 일이 있을까 싶어서 냉큼 작가님을 따라나섰습니다.서울에 사는 작가님과 인천에 사는 제가 새벽 6시에 성남 시청 앞에서 만나, 강원도 태백으로 출발했습니다. 휴게소에서는 이 책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함께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막히는 고속도로에서는 방송 작가로서 오랜 경력을 쌓은 직업인 선배이기도 한 작가님께 일하면서 겪는 고충에 대한 상담도 하고, 그러다 보니 강원도가 금방이더라고요. 태백에 도착해서는 교수님을 따라 나뭇가지를 헤치고, 바위를 오르면서 지층이 잘 보이는 스팟들을 찾아 이동했습니다. 작가님은 열심히 교수님의 설명을 경청하며 궁금한 것들을 물으시고, 저는 그 모습을 핸드폰에 담으면서 ’와 이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순간 여기 있어서 참 좋다‘ 싶더라고요. 지질학자는 저 말 없는 돌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돌이 보여주는 지구의 역사는 무슨 의미일까, 두 분의 대화 속에는 지질학에 대한 전문용어와 세상에 대한 근원적 질문 그리고 자기 일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태도와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다시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을 땐 저도 왠지 조금 더 뜨거운 마음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게 되었어요.《어떻게 과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에는 제각각의 영역에서 분투하는 여덟 명의 과학자와 나눈 밀도 높은 대화를 담았습니다. 지식을 전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자들에게는 각자의 가슴에 품고 있는 자신만의 질문이 있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과학을 통해 어떻게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는 동시에 우리의 사고방식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런 과학을, 이런 과학자를, 이런 책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새해에는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

《어른의 영향력》 편집 후기 고백합니다. 저는 좋은 팀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을요. 연차가 낮은 직원들과 일을 할 때면 ‘알아서’ ‘잘’ 해오길 바랐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왜 더 노력하지 않을까, 왜 이런 간단한 것도 못 할까 안타깝고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았고, 직원이 먼저 도움을 요청하길 바랐죠.집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에 예민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버거운 일이 있어도 ‘하지 마, 안 해도 돼’라고 말하며 감쌌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답답해하면서도 모든 일들을 대신 해주었습니다.<어른의 영향력> 편집 작업이 한창이었던 어느 날. <어른의 영향력>을 편집하면서, 이런 제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직원들을, 아이를 위한다고 했던 행동들이 뭐 하나 도움 된 게 없었겠구나 이제야 깨닫게 된 거죠. 저자인 데이비드 예거에 따르자면 저는 기대만 높고 지원은 하지 않는 ‘강요자 마인드셋’과 기대 없이 지원만 하는 ‘보호자 마인드셋’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고 있던 셈입니다.예거는 이런 경향이 젊은 세대를 무능하다고 여기는 ‘신경생물학적 무능 모델’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말로는 늘 “잘할 수 있잖아?” “잘하고 있어.”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런데 왜 못하니’, ‘어차피 못할 거 같으니 격려라도 해줘야지’라며 그들을 무시하는, 무능 모델의 신봉자였는지도 모릅니다.강요자 마인드셋도 보호자 마인드셋도 아닌, 멘토 마인드셋을 길러보겠습니다. <어른의 영향력>을 편집하면서, 이런 제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직원들을, 아이를 위한다고 했던 행동들이 뭐 하나 도움 된 게 없었겠구나 이제야 깨닫게 된 거죠. 저자인 데이비드 예거에 따르자면 저는 기대만 높고 지원은 하지 않는 ‘강요자 마인드셋’과 기대 없이 지원만 하는 ‘보호자 마인드셋’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고 있던 셈입니다.예거는 이런 경향이 젊은 세대를 무능하다고 여기는 ‘신경생물학적 무능 모델’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말로는 늘 “잘할 수 있잖아?” “잘하고 있어.”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런데 왜 못하니’, ‘어차피 못할 거 같으니 격려라도 해줘야지’라며 그들을 무시하는, 무능 모델의 신봉자였는지도 모릅니다.새해 첫날의 지는 해..를 보면서 다짐했습니다. 좋은 어른이 되자. 우리에게 새해가 있다는 건 참 다행한 일입니다. 과거 잘못했던 점들을 반성하고 새롭게 다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니까요. 그 옆에 좋은 책 한 권이 있다면 그 다짐을 실행하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올해 내내 책상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려 합니다. 조금 더 나은 어른, 현명한 어른, 진짜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한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방법입니다.* 《어른의 영향력》서점에서 보기교보문고: https://bit.ly/3C66Boy예스24: https://bit.ly/4a0hIfi알라딘: https://bit.ly/4fH7FNG

냉소가 아닌 다정의 시간이 돌아오길 바라며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편집 후기김민섭 작가의 신간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를 편집하는 내내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이 책에는 2010년대 중후반부터 2024년까지, 김민섭 작가의 삶과 성찰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 시기는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창 직장생활을 하기까지의 시기와 일치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의 쓴맛을 알고, 그 쓴맛이 달게 느껴지기까지의 시간인 것이죠. 실제로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에 김민섭 작가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대리사회》를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있는 그대로의 차가운 현실을 그려내지만, 그 안에서 유머와 낙관을 잃지 않았던 작가의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와 고민상담을 하고 싶었습니다.다정한 김민섭 작가개인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던 시기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시간 동안 있었던 사회적 사건들이겠죠. 세월호 참사, 세대 갈등, 젠트리피케이션, 비정규직 확대, 계급이 된 아파트, 암호화폐 열풍 등 이미 우리가 온몸으로 겪은 사건들이 이 책에서도 다뤄집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간을 거치면서 많이 냉소적으로 변했어요. 세상에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 가치는 아무것도 없고, 이기고 지고, 벌거나 잃는 등의 결과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김민섭 작가는 이 시간을 거치면서 ‘다정함’에 대한 믿음이 더욱 단단해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가치가 끝없이 추락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인간이게끔 하는 건 결국 ‘다정한 선택’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모르는 이의 굶주림에 손을 내미는 건 인공지능이 하지 않는 비합리적 선택이지만, 바로 그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한다고 김민섭 작가는 말합니다. 다음 세대에서는 다정함이 지능의 영역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면서요.이제 합리적인 답을 빨리해주는 건 기계들이 더 잘할 것이다. AI와 그걸 기반으로 한 무언가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 다음 세대들에겐 그러한 일이 더 심화될 게 분명하다.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사람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사람은 사람만의 선택을 할 수 있기에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건 정확히 ‘다정한 선택’이다.2024년 12월, 우리는 어느 때보다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을 많이 접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아직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아파하고 고민하는 다정함이 남아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남태령에 모여 농민과 함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고, 또 한 번의 참사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길이자 가야 할 길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뜻한 감정이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어쩐지 슬픈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2025년,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가 긴 겨울의 끝을 알리는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서점에서 보기 교보문고 https://bit.ly/3C4mRq6예스24 https://bit.ly/40kLo2D알라딘 https://bit.ly/3W3BAIG